타인의삶/영화

아무도 모른다 (Nobody Knows, 2004)

R-land 2018. 8. 2. 17:40



아무도 모르는 것을 

소년은 알아버렸다 


'영화를 찍으며 생각한 것'을 읽어보니 아마도 감독님의 인생관과 세계관을 가장 많이 반영한 작품이 아닐까 싶다.

그도 그럴것이 처음 기획 후 15년의 시간이 흐르는 동안 수정하며 감독님의 생각은 더 견고해 졌을테고 

너무 부정적인 결말이 아니냐는 사람들의 우려에도 제목과 구성은 바꿀지 언정 영화를 관통하는 시선은 고수하였다.

감독님은 편파적인 뉴스에도 사건의 이면을 바라보고자 한다.

이번 '어느가족'에서도 처음 시작은 우연히 뉴스에서 본 낚시대에 대한 에피소드를 상상하다 시작 되었다고 한다.

이러한 태도를 평소 지향하고 있었기에 책을 읽은 뒤 감독님의 참뜻을 알게 되어 영화가 좀 더 피부로 다가 오고, 

냉수 한잔을 마신 기분이 들었다. 사실 영화를 보고 난 뒤에는 이 더위에 비닐하우스에 들어 앉은 것 같은 답답함을 느꼈다.

칸 최연소 남우주연상에 빛나는 소년의 연기 때문인지 

자연광을 활용하며 개입보다는 리얼리티를 살리는식의 촬영법 때문인지 

어른의 부재를 오로지 아이들만이 견뎌내야 한다는 사실 때문인지

영화는 배경음악도 최소화 한채 아이들의 하루를 담담하게 그려나가는데

영화 속에 흘러가는 상실의 시간들은 점점 더 짙어지고 그 층이 겹쳐져 뿌예진 아이들을 바라 볼 수 가 없었다 

아이들은 그럼에도 살아가고 있는데 

나는 그게 마음이 아파서 영화가 끝나고도 흐릿해진 아이들이 머릿 속을 맴돌았다. 


방치된 6개월 동안 그들이 본 풍경은 잿빛 '지옥'만은 아니었을 겁니다. 그들 생활에는 물질적 풍요와는 다른 어떤 '풍요로움'이 존재했을 테고, 남매들 사이의 감정 공유가, 기쁨과 슬픔이, 그리고 그들 나름대로의 성장과 희망이 있지 않았을까요. 그렇다면 우리는 아파트 밖에서 '지옥'을 이야기할 게 아니라, 전기가 끊어진 아파트 안에서 그들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체험했을 '풍요로움'을, 그리고 그것이 어떻게 상실되었는지를 상상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요 ...

184P



영화는 사람을 판가름하기 위해 있는 게 아니다


이 영화에서 그리고 싶었던 건 누가 옳고 누가 그르다든가, 어른은 아이를 이렇게 대해야 한다는가, 아이를 둘러싼 법률을 이렇게 바꾸어야 한다는 등의 비판이나 교훈이나 제언이 아닙니다. 정말로 거기서 사는 듯이 아이들의 일상을 그리는 것. 그리고 그 풍경을 그들 곁에서 가만히 바라보는 것. 그들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것. 이를 통해 그들의 말을 독백(모놀로그)가 아닌 대화(다이얼로그)로 만드는 것. 그들 눈에 우리의 모습이 투영되어 보이는 것. 제가 원했던 건 이러했습니다

189, 190P


영화는 사람을 판가름하기 위해 있는게 아니며 감독은 신도 재판관도 아닙니다. 악인을 등장시키면 이야기(세계)는 알기 쉬워질지도 모르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기에 오히려 관객들은 이 영화를 자신의 문제로서 일상으로까지 끌여들여 돌아갈 수 있게 되지 않을까요..

이 생각은 지금도 기본적으로 변함없습니다. 영화를 본 사람이 일상으로 돌아갈 때, 그 사람의 일상을 보는 방식이 변하거나 일상을 비평적으로 보는 계기가 되기를 언제나 바랍니다.

190, 191P 영화를 찍으며 생각한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