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의삶/영화

공기인형 (Air doll, 2009)

R-land 2018. 8. 2. 17: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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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ILLCUT

공기인형




마음을가져 버린 러브돌의 시선으로 바라본 세상에 대한 이야기이다.
설정도 참신하고 영상도 봄날에 흩날리는 꽃잎 같고 여름날 불어오는 바람에 빛을 반짝이며 소리 내는 처마 밑 풍경같이 아름다워 한편의 동화를 보는듯했다.

고레에다 감독님 작품 중 좋았던것을 꼽으라면 넘버원 공기인형이다.
작품 중 몇편은 보다 잠들다를 반복하여 겨우 보고 몇편은 삼삼하네 하며 보았다.
그건 자극적 요소가 없어서 이기도 하지만 공감대를 형성하지 못한 것도 있다.
죽음도, 부재도 경험하지 않았고 아직 결혼 전, 출산 전 이기도 하고, 여자이기 때문에 그렇게 어머니는 될지 몰라도 아버지는 될 수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 하지만 공기인형을 보게 되었으니 고레에다 주간은 잘 한 짓이 되었다.

영화를 보고 텅빈것의 묵직함을 느꼈다.
텅빈것이 아파서 이기도 했고, 결국 텅빈 혼자인 것들이 모이면 채울 수 있음을, 그 희망을 보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들이 던지는 이야기들이 묵직했다.
공기인형은 비어 있어 작은 구멍에도 공기가 빠져 버리면 그대로 사라져 버릴 지도 모른다.  
하지만 어떤 것보다 공기인형은 가득차있다. 공기로 누군가의 숨결로
오히려 사람들은 온갖 것들로 가득차 있는 것 같지만 비어 있다. 공허하고 외롭다. 자신만의 성을 만들지만 그것은 상처 받기 싫기 때문이고, 그 성은 사람들을 더 외롭게 만든다.
인형이 사람이 되는 것 처럼 어쩜 사람이 감정 없고 생기 없는 인형 같다.

타지않은 쓰레기라는 표현도
손이 차가우니 마음이 따뜻할 것이라는 말로 노조미를 위로하는 할아버지도 그 할아버지가 들려준 시도
공기펌프를 버리고 늙어가고 있는 것을 좋아하는 노조미도
모두 모여 노조미를 축하해 주는 생일파티도
고레에다 주간을 한 게 잘 한 일로 만들어 주었다. 

바람이 되어 사라져 버린 노조미
타지 않은 쓰레기 더미에 있어도 그녀는 아름답다.


 영화 속 등장 하는 시다. 정말 좋다. 삶의 방향에 대해서 말한다. 그리고 위안이 된다. 이 시를 영화로 만들면 공기인형이되고 공기인형을 시로 표현하면 '생명은'이 될것 같다.


생명은 요시노 히로시

생명은 혼자서는 채울 수 없도록 만들어졌다.
꽃도 암술과 수술만으로 부족하고
곤충이나 바람이 있어야 수정이 된다.

생명도 빈공간을 가지고 있고 그 공간은 다른사람만이 채울 수 있다.

아마 세상은 이런 사람들의 총합
하지만 우리는 서로의 빈공간을 채우는 것은 알게 모르게 조각나는것과 함께 무관심으로 있는 관계

가끔은 역겨워하는 생각도 용서되는 관계
세상이 불안정하게 만들어진건 왜 일까

꽃이 피어 있다
가까운 곳에 곤충의 모습을 한 타인이 빛을 쫓아 날아 다닌다

나도 어떤 때는 누구를 위한 곤충이었을까

당신도 어느때는
나를 위한 바람이었을지도 모른다.


시가 너무 좋아 시인의 다른 작품을 찾아보았다.
I was born 이다. 감독님은 이 시에서도 모티브를 찾으신것 같다. 하루살이에 대한 이야기
인간은 무엇을 위해 태어나지는 것일까 묵직한 질문을 던진다.


I was born 요시노 히로시

그건 영어를 이제 막 영어를 배우기 시작했던 시절이었다.

 어느 여름날 저녁. 아버지와 함께 절의 경내를 걷고 있자니, 어스름한 저녁 안갯속을 흰 옷차림의 여성이 피어오르듯 다가왔다. 우아하고도 나긋하게.

 여자는 몸이 무거워 보였다. 나는 아버지의 눈치를 살피면서도 여자의 배에서 눈을 뗄 수 없었다. 밑으로 머리를 둔 태아의 유연한 움직임을 배 위로 그려보면서 이윽고 세상에 태어날 그 신비로움에 빠져 있었다.

 여자는 지나갔다.

 소년의 망상은 비약이 쉽다. 그때에 나는 “태어나다”라는 단어가 그야말로 “수동태”라는 사실을 불현듯 이해했다. 흥분한 나는 아버지에게 말했다.
― 역시 I was born이에요.―
아버지는 의아하다는 듯이 나의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나는 다시 말했다.
― I was born이요. 수동태요. 그러니까 사람은 태어나지는 것이라고요.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말이죠.―

 그때 아버지는 아들의 말에서 어떤 놀라움을 느꼈을까. 아버지에게 비치는 나의 표정은 단순한 순진함이었던 것일까. 그것을 관찰하기에는 나는 아직은 너무 어렸다. 내게 그것은 단순한 문법상의 발견에 지나지 않았기 때문에.

 아버지는 한동안 묵묵히 걷고서야 뜻밖의 이야기를 꺼냈다.
― 하루살이라는 벌레는 말이다. 태어나서 이삼일 만에 죽는다고 하더구나. 그렇다면 대체 무얼 위해 이 세상에 태어나는지, 그게 무척이나 궁금했던 시절이 있었지. ―
 나는 아버지를 바라보았다.
 아버지는 이야기를 계속했다.
― 친구에게 그 말을 했더니, 어느날인가 이게 하루살이라며 현미경으로 보여주더구나. 설명을 듣자니 입은 완전히 퇴화해서 먹이를 섭취할 수도 없는 모양이었다. 위를 열어보아도 들은 건 공기뿐. 보자니 그 말 그대로였지. 그런데 그 배속은 홀쭉한 가슴팍까지 알로 가득하게 차올라와 있었다. 그 광경은 마치 반복되는 삶과 죽음의 슬픔이 어지러이 섞여 목구멍까지 치밀어 오른 것처럼 보일 지경이었다. 쓸쓸한 빛깔의 알이었다. 내가 친구에게 알이 있다고 하자 그 녀석도 끄덕이며 말하더라. 애처롭다며. 그 일이 있고 얼마 후의 일이었구나. 네 엄마가 너를 낳고 가버린 건.―

 아버지가 무슨 이야기를 더 했었는지는 이제 기억나지 않는다. 그저 하나의 아픔처럼 나의 뇌리에 애틋하게 새겨져 버렸을 뿐이다.
 ―홀쭉한 어머니의 가슴팍까지 숨 막히게 들어찼었던 나의 하얀 육체.―


영화 한편이 마치 배두나 영상집이라는 느낌마저 들 정도로 아름답게 표현되는데, 책을 읽고나니 그녀의 프로페셔널함에 더 큰 아름다움을 느꼈다. 몇페이지에 걸쳐 극찬하는데 글로만 봐도 대단하다 느껴졌다. 세계적 감독들과 작품을 하는데에는 숨길 수 없는 이유가 있었다.



238p 영화를 찍으며 생각한 것


이 작품의 주제인 '공허'도 보통은 틀림없이 전과 마찬가지로 어두운 분위기를 풍길 테지만, 고다 씨가 그린 20쪽짜리 작품에서는 타자의 숨이 자신의 몸 속으로 들어와 채워진다는, 타자와 관계를 맺는 방식에서 풍부한 가능성을 느꼈습니다.
다시 말해 공허는 타자와 만나는 장소에 펼쳐져 있다. 공허는 가능성이다. 자신이 채워지지 않았다는 것은 곧 타자와 연결될 가능성이다. 라고 말하는 매우 긍정적인 작품이라고 생각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