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의삶/책

영화를 찍으며 생각한 것-고레에다 히로카즈

R-land 2018. 8. 3. 14:59

1.

시작은 지난 달 봄날의 책방에서 이 책을 본 것. 그리고 몇일 뒤 단순히 읽어보고 싶어서 주문했지만 나의 다른 책들과 마찬가지로 책장에 꽂히는 신세가 되었다. 그때까지는 칸 영화제에서 수상한 사실도 몰랐고,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님 작품이라고는 진짜로 일어날지도 몰라 기적을 도전했다가 3번을 초반부에서 잠에 들어 포기하고 바닷마을 다이어리는 끝까지 보기에 성공했지만 역시나~ 일본 영화~ 감성 잔잔해~하며 심심하게 봤을 뿐 이렇게 사스가 고레에다 감독님! 믿고 보는 고레에다 감독님! 하며 팬덤이 형성되어 있는지 몰랐다.

그러다 CGV에서 고레에다 감독님의 황금종려상 수상과 내한을 기념해 대표작 기획전을 하는 것을 알게 되었고, 수상작 '어느가족' 시네마톡을 광주에서도 관람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오픈시간에 맞춰 예매를 하고 그날로 감독님 전작들과 책을 준비해 나만의 고레에다 주간을 맞이하게 되었다.

책은 '어느가족' 이전 텔레비전과 영화 작품들을 연대순으로 제작 뒷이야기나 당시나 그 후에 생각한 것들을 담고 있다. 그래서 나는 영화를 본 뒤 해설서 같은 느낌으로 읽었다. 단순히 영상미나 스토리를 감상하는 것에 그쳤던 것을 배우들에 관한 이야기, 촬영기법이나 당시 상황들 그리고 감독님 속내를 알게 되니 좀 더 이해와 느낌의 깊이를 높일 수 있었다.



2. 책을 읽고 생각한 것 


감독님은 소통왕

책을 읽으면서 이해가 되지 않았던 부분은 주제를 정하지 않고 찍으면서 채워 나간다고 한 부분 이였다. 본인이 쓰고 본인이 찍는 작품에 그게 가능한가 싶었다. 하나의 디테일도 세심하게 고심하시는게 보이는데 주제를 정하지 않는다니...

이건 시네마톡 하면서도 계속 의문이였다. 질문을 하면 아 그럴수도 있겠네요. 왜 그랬을까요. 인물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을까요. 누군가는 작품을 자식이라고 표현할 정도로 분신처럼 생각하는데 , 너무나 객관적으로 바라보시는 모습이 특이하다 생각했다. 리뷰를 쓰다보니 알겠다. 주제를 정해놓는 다는 것은 한계를 정하는 것과도 같다는 것을. 큰 이야기의 흐름이야 정하겠지만, 열린 자세로 찍기 때문에 배우들이 제시하는 의견 받아들여 수정하고 대사에 반영할 수도다는 것을. 그래서 같은 영화를 보고도 절망, 희망, 어둠과 빛, 사랑 혹은 아픔을 느끼는 것이겠지 이해와 노이해 재미와 노재미도


감독님은 솔직함

본인이 가해자 측인 일본인이기 때문일지도 모른다고 표현은 하지만 민감할 수 있는 역사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가해자측 피해자측을 떠나 일본의 책임을 묻는다. 영화 '원더풀라이프'에서도 '관동대지진'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는데 그건 잘못된 소문이였어 라고 말한다. '서대문형무소'에 대한 생각은 나 역시 피해자 측인 한국인이여도 공감한다. 텔레비전 작가, 다큐멘터리 출신에 조금 콤플렉스를 가졌다는 것 부터. 일본 영화시장에 대해서도 비판하시고 본인의 작품들과 경력에 대해서도 겸손한 자세로 솔직하게 평가 하신다. 책 후기같은 서문과 마지막 장을 보면 감독님은 앞선 20년에 방점을 찍고, 앞으로의 영화인생에 대해 고심하심이 보인다. 그리고 발전의 포부를 밝히신다. 세계 대표 영화제에서 큰 상을 받아 정점을 찍었기 때문에 차기작에대한 부담감이 있을 것 같은데,  고민이야 있겠지만 그것은 모든 작품에서 그랬을 테고 감독님은 새 영화를 구상해서 찍을 뿐이고, 어느가족을 정점이라 생각하지 않고, 다가올 미래에 대한 위기는 인생에 내리막도 있고 굴곡도 있는 것이 당연지사이기 때문에 담담하게 받아드리실 각오가 되신것 같다. 이것은 시네마톡에서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이야기에서도 하신 이야기 이기 때문에 평소 대부분의 생각이 지금 작품, 다음 작품인 것 같다.  열일 하셔서 매년 작품이 개봉하고 내년에도 개봉이 예정되어 있다.


인생을 대하는 태도,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 영화를 만들때 대상을 대한 애정, 인간적이고 따뜻했다.  고레에다라는 사람 자체에 더 매료 된 것 같다. 이건 책을 읽을때도 느꼈지만 , 시네마톡에서 실제 말 하는 것을 보고 들으니 더 잘 알 수 있었다. 말주변이 없으시고, 모든 질문에 신중하고 고심하시는 모습이 진심으로 다가왔다. 매사 이런 태도로 자신의 길을 걷는 것. 장인의 모습이였다.

뭐 영화는 삼삼한 것들이 많았다. 평양냉면같은것. 보다 잠 든 것도 몇편이고 공감하지 못한 것도 몇편이다.  물론 자극에 피로를 느낄때면 생각 날 때도 있겠고, 나이가 더 들고 , 나도 새로운 가족을 이루게 된다면 공감할 수 도 있겠지


7P

그리고 하나 더. 다행히도 20년간 많은 영화제에 참가하며 내 안에서 '역사는 끝나지 않았다'라는 커다란 인식의 변화가 있었다. 영화는 백 년의 역사를 그 거대한 강에 가득 담고 내 앞을 유유히 흐르고 있었다. 강은 말라붙지 않았으며, 아마 앞으로도 형태를 바꾸며 흘러갈 것이다. "모든 영화는 이미 만들어졌다"라는 말이 진실인 양 떠돌던 1980년대에 청춘기를 보낸 사람은 '지금 내가 만드는 것이 과연 정말로 영화인가'라는 물음을 언제나 품고 있다. 하지만 나는 그런 '불안'도 피로 이어진 듯한 연대감도 모두 뛰어넘어, 순순히 그 강의 한 방울이 되기를 바랐다. 이 책을 통해 내가 느끼는 두려움과 동경이 조금이라도 독자에게 전해진다면, 그것은 그것대로 의미가 없지는 않으리라 생각한다.



252P 

이미지인가 오마주인가

대학에서 학생들에게 종종 '영상은 자기표현인가 메세지인가'라는 질문을 받습니다. 적어도 저는 다큐멘터리로 시작했기 때문에 작품은 결코 '나'의 내부에서 태어나는 게 아니라 '나'와 '세계'의 접점에서 태어난다고 인식하고 있습니다. 특히 영상은 카메라라는 기계를 거치므로 이 부분이 두드러집니다. 자신의 메세지를 전달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이 세계와 만나기 위해 카메라를 이용하는' 것이야 말로 다큐멘터리의 기본이며, 그것이 픽션과의 가장 큰 차이점 아닐까요. 앞서 말한 요시노 히로시 씨의 시에도 쓰여 있든 '사람은 원래 결여를 품고 태어나 그것을 타자로부터 채운다'는 인간관은 영화철으로도 저와 매우 잘 맞습니다. ... 다니카와 씨가 "시는 자기표현이 아니라 세계의 풍성함을 기술해 나가는 것"이라고 거듭말씀하신 것도 마음에 강렬하게 남아 있습니다. ''' 아라키 씨가 "지금 사진에 빠져 있는 것은 오마주다"라고 되풀이해서 말씀하신 것도 인상적이었습니다. 사진에서 중요한 것은 작가의 상상(이미지)가 아니라 피사체에 대한 애정(오마주)이라고요. 그 점이 반영되는 것이 사진이라고요. 저는 이 의견에 진심으로 공감합니다.


255P 

과연 저는 그 '10년'을 이 미 경험해 버린 걸까요? 지금은 몇 년째일까요? 어쩌면 아직 그 시기가 찾아오지 않았을까요? 때때로 이런 생각을 합니다. 좋든 나쁘든 저는 제 문체를 그다지 고정적이라고 생각하지 않으며, 이미지보다는 오마주가 중요하다는 점도 알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상상력이 제 안에서 고갈되어 찍지 못하게 될 걱정은 사실 전혀 안합니다. 영화를, 세계를 이렇게 마주하는 방식을 앞으로 어디까지 성숙시켜 나갈 수 있을까? 또 이를 위해 무엇이 필요할까? 앞으로도 계속 생각하고 싶습니다.


386P 

만약 제 영화에 공통된 메시지가 있다면,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것은 비일상이 아니라 사소한 일상 속에 존재한다는 점입니다.


374P 

주제는 디테일을 채우는 가운데 태어난다

주제는 찍기 전에 아는 것이 아니라 작품의 자잘한 디테일을 채워 나가는 가운데 생기는 경향이 강합니다. 하지만 주제나 메세지는 저 자신이 의식하고 있을 뿐이라서 인터뷰할 때도 되도록 말하지 않으려 합니다. 작품에는 제가 지금 살고 있는 세계나 생각하는 게 반영되어 있을 테니 구태여 말로 표현함으로써 제가 파악하고 있는 부분 외의 주제나 메시지가 버려지는 것을 피하고 싶기 때문입니다. 반대로 가끔 저에게 말을 요구하지 않고 작품에 떠도는 의식 아래의 주제나 메시지를 건져 올려서 언어로 표현해 주는 기자나 영화평론가를 만나면 몹시 기쁩니다.

418P 

만약 저의 세계관 안에서만 영화를 계속 만들어 나가면, 영화가 점점 축소 재생산되어 '어쩌고 월드'라고 불리는 세계 속에 갇힐 것 같습니다. 그보다 별로 접점이 없는 사람이나 사물 등과 만나서 만들어 나가는 편이 저 자신도 재미있을뿐더러 새로운 발견도 있습니다. 제 경력상 분기점이 된 이 세 작품 덕분에 저의 수용력이 아주 커진 것 같습니다. 물론 감독의 이름으로 이야기되는 작품을 찍고 싶긴 하지만, 적어도 50대 동안에는 의식적으로 바깥쪽을 향해 세계를 넓혀 나가고 싶습니다.


420P 

작가보다 장인로 있는 편이 바람이 솔솔 통해서 작품이 점점 열린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이는 커다란 변화였습니다 ...

시대나 사람의 변화를 뒤쫒는 게 아니라 우리의 사소한 생활에서부터 이야기를 엮어 나가고 싶습니다. 그러므로 제 발밑의 사회와 연결된 어두운 부분을 주시하면서 한편으로는 새로운 만남을 소중히 여기고, 외부와 마주하고, 그 좋은 점을 영화 속에서 표현하는 것에 앞으로도 도전하고 싶습니다.

  



3.​


영화 제작 과정에서  콘티나 메모 같은 것도 좋은 볼거리


감독님의 젊은시절,  현장사진들도 중간중간 있다


좋았던 것은 매 장마다 끝에 주석이 달려있어서 해외인사나 작품들 영화용어들에 대한 설명을 볼 수 있는 것.